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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설자 : 외교부 2차관
###2. 연설일 : 2016.02.24
###3. 한국핵정책학회 2016 춘계학술회의 기조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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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한국핵정책학회 회장님, 민경식 한국핵물질관리학회 회장님, 송명재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회장님, 전봉근 국립외교원 안보통일연구부장님, 한용섭 전 한국핵정책학회 회장님,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전문가 여러분, 오늘 한국핵정책학회가 주최하는 특별학술회의에 저를 불러 주시고 우리 외교가 당면한 북핵문제를 포함한 핵정책 전반에 대해 소견을 말씀드릴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핵 문제는 국가안보 뿐만 아니라 국제규범과 경제, 과학?기술 등 여러 측면에서 중대한 함의를 지니는 이슈입니다. 안보를 최우선에 두고 종합적인 국익을 추구하며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외교부로서는 가장 큰 정책적 비중을 두고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사안입니다.

4년 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탄생한 한국핵정책학회는 그동안 핵/원자력 분야에서의 학술적 논의를 주도하면서 정부의 관련 정책 수립에도 소중한 조언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오늘 이 회의는 시기적으로도 아주 적절한 때에 개최되는 것이어서 매우 의미있는 토론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 협상이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제4차 핵안보정상회의를 불과 한달여 앞두고 개최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께서 가장 큰 관심을 갖고 계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응과 관련하여 현 상황이 제기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제 소견을 먼저 말씀드리고, 이어서 현재 진행 중인 정부의 외교적 노력에 대해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북한은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난 1.6 4차 핵실험을 강행한데 이어 2.7에는 장거리 탄도미사일까지 발사하였습니다. 이는 국제사회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서 국제 평화와 안전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일 뿐 아니라, 박 대통령께서도 공개적으로 언급하신 바 있듯이, 동북아의 안보지형을 흔들고 북핵문제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엄중한 사안입니다. 연쇄 범법자(serial offender)와 같은 북한의 도발 행태에 김정은 정권의 불가측성, 잔인성, 무모함이 더해져 북한은 이제 마치 하나의 거대한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분들이 간과하고 계신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21세기 들어 핵실험을 실시한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며, NPT 체제 내에서 핵프로그램을 개발하고 NPT 및 IAEA 탈퇴를 선언한 후 스스로 핵보유국임을 헌법을 통해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있는 나라도 현재 북한 이외에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북한은 원자탄/수소탄뿐 아니라 ICBM/SLBM 등 핵무기의 운반수단까지 개발하면서 종합적인 핵능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고, 실제로 이를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표명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당.정.군과 같은 국가기구가 불법적 활동을 통해 축적한 희소 재원을 주민들의 인권과 민생을 억압하며 WMD 개발에 투입하고 있는 북한은 이제 하나의 거대한 WMD 개발기구화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국제사회가 과거와 같은 수준과 방식으로 북한의 도발에 대응할 경우 북한은 5차, 6차 핵실험과 7차, 8차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계속 시도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NPT 체제의 신뢰성 훼손은 물론 동북아 지역의 군비경쟁을 가속화하여 지역불안정을 야기시키고, 동북아를 전세계에서 가장 핵무장된 지역으로 만들게 될지도 모릅니다. 엄중한 상황에는 그에 상응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정부는 현 시점에서 북한의 폭주를 막지 못하면 결국 핵을 가진 북한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상황인식하에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의심할 필요도 없이 북한은 이번 도발을 감행하면서 국제사회의 예상되는 반응을 미리 계산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유엔 안보리 제재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대응은 북한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어야 합니다. 과거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실효적인 제재와 압력을 통해 북한이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하고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는지 고통스럽게 깨닫게 함으로써 북한의 전략적 셈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아야 합니다. 70년전 아인슈타인이 지적한 바와 같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해결하기도 하는 것은 “고삐풀린 원자력”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입니다.

북한의 사고방식과 셈법을 바꾸기 위해 정부는 ▲유엔 안보리 차원의 추가 제재와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국의 독자 제재 ▲국제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대북 압박이라는 3개 전선에서 입체적인 국제 공조 강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먼저 유엔 안보리 제재와 관련하여서는 박 대통령께서 미?일?중 정상들과의 통화를 통해 핵심국과의 협의를 주도하셨고, 윤병세 외교장관은 미?중?러를 포함한 주요국 외교장관과의 면담과 15개 이사국 외교장관과의 통화에 이어 2월초 유엔 방문시에는 안보리 이사국 대사 전원을 접촉하여 우리 정부의 단호한 대응 의지를 전달하고 강력한 제재 결의 채택을 촉구하였습니다. 저도 지난 1월말 안보리 이사국 주한 대사들을 초치하여 특단의 대응이 필요한 엄중한 상황임을 강조하였고, 1차관과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각각 주요국들의 카운터파트들과 회담 또는 통화를 갖고 대응전략을 긴밀히 협의해 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주도적 노력의 결과, 현재 중국을 포함한 모든 이사국들이 진지하게 안보리 결의안 협상에 임하고 있고, 협상은 지금 최종 단계에 와 있습니다. 이달 말 경에는 결과를 알려 드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만,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실효적인 제재조치들이 안보리 결의에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무엇보다도 대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중국조차 강력하고 실효적인 안보리 제재 결의를 채택해야 한다는 데에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하겠습니다. 정부는 이번 안보리 결의가 북한에 대한 마지막 제재 결의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결의 채택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주요국들의 양자 차원에서의 독자제재를 통해 유엔 안보리 제재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도 적극 경주하고 있고, 안보리 결의 채택 후 이러한 노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고자 합니다. 이미 미국 의회는 며칠 전 이른바 Secondary Boycott 라 불리는 제3자 제재 요소를 포함한 강력한 대북제재 법안을 통과시켰고, 일본도 북한 기항 제3국 선박의 일본 입항 금지 등 이례적 제재 조치 계획을 발표하고 며칠 전부터 이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EU, 호주 등 일부국가들은 이미 대북 양자제재를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만,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더욱 강력한 추가 제재를 도입했거나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라는 강력한 조치로 결기를 보여준 것도 이러한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데 주효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와 함께, 대북 압박 강화를 위한 국제공조 노력에도 많은 국가들이 동참해 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110개가 넘는 국가, 국제기구들이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 규탄 성명을 발표하였고, 자국내 북한 공관 개설을 보류하거나, 국제회의 참석 초청을 취소하는 등의 압박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조치는 30여건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하고 북한을 올바른 선택으로 유도하는데 적지않은 기여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21세기의 새로운 안보 환경은 북핵문제와 같은 핵확산 방지 측면 뿐만 아니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증진과 개인 및 단체의 잠재적 역량 증대에 따른 핵안보 증진을 위해서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핵안보 조치가 강화되고 있고 무기급 핵물질의 절대량도 감소했지만, 원전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 등 새로운 형태의 위협은 계속 증대되고 있습니다. 동북아 지역에서의 핵안보 및 원자력 안전 협력 증진도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3월 말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제4차 핵안보정상회의는 2010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주창으로 시작된 핵안보정상회의 프로세스의 마지막 회의입니다. 핵안보정상회의는 정상급의 직접 관여를 통해, 6년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핵과 테러의 연계를 막기 위한 국제적 노력을 레짐으로 정착시키고, 핵안보가 국제사회의 공공재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2012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국제 핵안보 논의를 선도해 왔으며, 서울 정상회의에서는 공동성과물(gift basket) 개념을 도입하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원자력안전 이슈를 핵안보와 통합하여 논의하는 등의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또한 원자력 분야의 탁월한 기술력을 발휘하여 연구용 원자로 사용 LEU 연료 개발을 위한 국제협력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국제 핵안보 교육훈련센터의 설립도 이루어 내었습니다.

이번 워싱턴 정상회의를 마지막으로 현행 방식의 회의는 종결되지만, 우리나라는 핵 비확산과 평화적 이용에 대한 확고한 공약하에 핵안보 분야에서도 계속 선도적 역할을 해 나갈 것입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핵안보정상회의 이후 국제 핵안보 논의를 이끌어갈 IAEA에서의 기여입니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금년 12월 개최되는 IAEA 핵안보 각료회의에서 의장직을 맡아, 그동안 핵안보정상회의를 통해 결집된 정치적 의지를 IAEA 차원에서의 협력사업으로 구체화해 나가는데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IAEA의 핵시설 사이버 안보 관련 노력을 집중 지원하는 한편, 유엔 안보리 1540위원회, 세계핵테러방지구상(GICNT) 등에서도 그간의 의장국 경험등을 토대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나갈 계획입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저는 작년 9월 IAEA 총회에 수석대표로 참석하면서, 우리나라 핵 정책의 역사를 잠시 회고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기 전인 1957년, 우리나라는 IAEA 창설과 동시에 회원국이 되었고 최초의 국비유학생을 배출한 것도 원자력 분야였습니다.

당시 혜안을 가지고 추진한 정책이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가 세계 5위의 원자력 대국의 지위에 올라서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되고 있습니다. 21세기 인류 공동의 과제인 기후변화 대응이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도 안정적인 청정 에너지원 확보는 필수적이며, 우리에게 있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권리입니다.

이미 유명해진 사진이지만, 야간에 한반도를 찍은 위성사진을 보면 빛으로 가득한 남쪽과 칠흑같은 어둠에 싸여있는 북쪽이 확연히 대비됩니다. 남북간의 이러한 격차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 중 어느 쪽을 선택했느냐에 따른 결과입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국내 일각에서 핵무장론이나 전술핵 재도입 등의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군사안보적 측면에서나 경제적 측면에서나 이러한 주장에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미 굳건한 한?미 연합 방위 능력과 맞춤형 억제전략 등을 통해 북핵 및 미사일 위협에 대한 강력한 억지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정부의 입장은 그동안 누차 강조해 온 것처럼, 한반도에 핵이 있어서는 안 되며, 대통령 말씀대로 “핵무기 없는 세상의 비전은 한반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비확산에 대한 국제적 의무를 철저히 준수하면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이라는 IAEA의 창립이념과 비전에 대한 공약을 확고히 지켜나갈 것입니다.

핵 문제는 핵비확산, 핵군축,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핵안보, 그리고 핵안전이 마치 오륜기의 원처럼 서로 연결고리를 갖고 작동하고 있는 복잡한 이슈입니다. 이처럼 복합적인 문제를 다루어 나감에 있어 학계와 전문가 여러분들의 높은 식견과 경험, 그리고 정책적 조언은 정부의 정책 수립과 이행에 소중한 밑거름이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모쪼록 오늘 이 학술회의가 한국핵정책학회의 활동에 있어 큰 의미를 갖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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